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광화문광장에 또 다른 조형물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그냥 관 주도의 기념 공간이 하나 더 생기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6·25 전쟁 참전 23개국의 헌신을 기리는 공간을, 엄숙하고 무거운 방식이 아닌 빛과 미디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방식 자체가 달랐습니다.

감사의 빛 23, 상징조형물이 전하는 연대의 역사
5월 12일 광화문광장에 개장한 '감사의 정원'은 지상의 상징조형물 '감사의 빛 23'과 지하 미디어 체험 공간 '프리덤 홀'로 구성됩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 지상의 23개 조형물입니다.
각 조형물의 높이는 6.25m입니다.
여기서 6.25라는 숫자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짜를 상징적으로 담아낸 것으로,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역사적 기억을 형태로 옮긴 설계입니다. 조형물들은 참전 시기 순서대로 가장 남쪽의 미국부터 가장 북쪽의 대한민국까지 남북 방향으로 일렬 배치되어 있습니다.
제가 직접 자료를 살펴보니, 이 배치 방식 자체가 각국의 연대 역사를 시각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꽤 섬세한 기획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형물에 활용된 석재는 참전국들이 직접 기증한 것입니다.
여기서 '기증 석재 활용'이란 단순한 자재 조달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땅에서 온 돌을 물리적으로 심는다는 의미로, 국제적 연대를 상징적으로 물성 화한 방식입니다.

현재 네덜란드, 인도,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독일 7개국의 석재가 사용됐고, 스웨덴, 호주, 미국, 태국, 터키 5개국의 석재도 올해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반영될 예정입니다.
야간에는 조형물에서 빛이 하늘로 쏘아 올려지는 조명 연출이 진행됩니다.
운영 시간은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이며, 동절기에는 오후 7시부터 10시로 조정됩니다.
빛 연출은 30분 간격으로 10분씩, 하루 총 6회 운영됩니다.
저는 이 야간 조명 연출을 단순한 포토존으로 보기보다는, 23개국의 존재를 밤하늘에 새기는 방식으로 읽었습니다.
감사의 정원을 방문할 때 확인하면 좋은 기본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위치: 광화문광장 (지상: 감사의 빛23 + 지하: 프리덤홀)
- 야간 조명 운영: 매일 저녁 8시~11시(동절기 7시~10시), 30분 간격 10분씩 6회
- 전시 해설 프로그램: 화요일 오전 10시와 오후8시, 1일 12회, 회당 20명 (월요일 휴관)
- 해설 예약: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영어 해설 포함)
프리덤 홀,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의 기록
지하 공간인 프리덤 홀은 제가 개인적으로 더 인상 깊었던 부분입니다.
단순히 전쟁의 슬픔을 전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ODA(공적개발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과정을 미디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기획의 시각이 달랐습니다.
여기서 ODA(공적개발원조)란 선진국 정부나 국제기구가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돕기 위해 자금이나 기술을 제공하는 국제 협력 방식을 말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사례로 꼽힙니다(출처: 한국국제협력단(KOICA)).
총 4개의 미디어 시설과 13개의 참여형 콘텐츠로 구성된 프리덤 홀의 핵심은 '메모리얼 월'입니다.
메모리얼 월이란 대한민국과 22개 참전국을 상징하는 23개의 삼각 LED 패널로 이루어진 대형 영상 전시 구조물로, 그 앞에서 '블룸투게더'와 '평화의 폭포수' 두 편의 콘텐츠가 상영됩니다.

'블룸투게더'는 참전국의 국화(國花)를 모티브로, 꽃잎이 물결을 이루며 피어나는 이미지로 연대와 희생의 메시지를 시각화한 영상입니다.
꽃의 개화는 연대의 의지를, 꽃잎 하나하나는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평화의 폭포수'는 암벽에서 자라난 식물을 통해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성장을 표현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추상적 상징을 미디어 아트(Media Art)로 구현할 때 메시지가 희석되기 쉬운데, 이번 연출은 구체적인 상징체계를 갖추고 있어 전달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여기서 미디어 아트란 디지털 기술과 영상을 결합해 감각적 경험과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예술 형식을 말합니다.
'연결의 창' 코너에서는 AI 복원 기술을 활용해 6.25 관련 사진을 되살린 '되살아나는 과거'와, 뉴욕 타임스퀘어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월드포털'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AI 복원 기술이란 손상되거나 해상도가 낮은 과거 사진을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분석·재구성해 현재의 고해상도 이미지로 재현하는 기술입니다.
단순히 옛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기술로 과거를 다시 불러온다는 개념 자체가 이 공간의 주제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솔직한 우려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요즘 공공 전시 공간들을 다녀보면서 느끼는 건데, 화려한 미디어 연출이 오히려 핵심 메시지를 가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감사의 정원 역시 야간 조명과 LED 영상이 인상적인 만큼, 방문객들이 역사적 맥락보다 인증 사진에 집중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서울시가 이 공간을 지속적으로 의미 있게 운영하려면, 콘텐츠의 질과 해설 프로그램의 깊이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체험형 전시 공간의 재방문율은 해설 프로그램 운영 여부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광화문 감사의 정원은 단순히 한번 보고 지나치는 야경 명소로만 소비되기엔 담긴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빛이 하늘로 뻗는 그 장면 뒤에, 23개국이 기증한 돌 한 조각 한 조각의 무게가 있다는 걸 알고 방문하는 것과 모르고 방문하는 건 분명히 다른 경험이 됩니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해설 프로그램을 예약하고 가는 것을 권합니다.
밤 8시 이후 조명 연출 시간에 맞춰 지상과 지하를 함께 돌아보는 동선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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